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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Photos/Korea

[경북 안동]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 병산서원[屛山書院]

by 쪼옹 2012. 8. 3.

사적 제 260호인 병산서원 (屛山書院)

서애 류성룡이 선조 8년인 1575년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다

류성룡은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뒤 1614년에 선생을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폐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서원이 되었으며 철종 14년인 1863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존속된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 하나이다




배산임수의 전형을 볼수 있는 곳으로 뒤로 화산이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는 곳에 위치한 병산서원




서원에 들어서면 바로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復禮門]이 나온다


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병산서원의 솟을삼문은 가운데 칸만 판문(板門)이고, 좌우로는 담장과 구분되는 벽채를 한 칸씩 두고 있다

‘복례’라는 이름은 논어 <克己復禮爲仁>에서 유래한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함축한 경구(警句)로서,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는 유학의 자기절제의 정신을 표현해 놓은 것이다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입교당 중건일기(1921)」에 의하면 서원의 측면인 만대루 동편에 있었던 것을 이건한 것이라 하는데 병산의 험한 형세를 피하고자 했던 풍수원리가 담겨있었다




복례문을 지나면 만대루[晩對樓]가 나온다

병산서원에서 가장 알려진 건물로서 건축과 조형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다




기둥사이로 보이는 낙동강과 병산은 마치 7폭 병풍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만대’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한 구절인 '취병의만대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白谷會深遊)'에서 따온 말이다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 하고, 흰 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히 즐기기 좋구나’

병산서원을 대표하는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로 서원안에서 만대루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 어디 하나 막힘이 없이 탁 트여 있어 건물과 자연이 하나인듯 느껴진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교수도 극찬한 만대루는 건축적으로나 풍수적으로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뒤로는 화산이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는 배상임수에 전혀 손색이 없는 병산서원이지만 낙동강 너머 해발200미터가 넘는 병산은 자칫 답답함을 안겨줄수 있는데 만대루의 기다란 7칸 누각의 기와지붕이 병산의 높이를 줄여서 답답함을 해소해준다

또한 정문인 복례문과 마찬가지로 병산에서 내뿜는 산살(山殺)을 막아주는 풍수원리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병산서원은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되어 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점에서

'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 ' 로 이름나 있다






드디어 병산서원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입교당[立敎堂]이다. 원래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이었고 명륜당이라고도 불렸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며,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으로 가구는 5량(樑)이다

강학당을 가운데로 하고 동쪽의 명성재(明誠齋)와 서쪽의 경의재(敬義齋), 세 부분으로 나뉜다. 양쪽 방에는 온돌을 들이고 중앙의 강학당은 3칸의 대청으로 개방하였다. 툇마루가 마련된 명성재에는 서원의 원장(院長)이 기거했으며, 서쪽의 경의재는 이른바 교무실에 해당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입교당은 병산을 품고 있는것 뿐 아니라 뒷마당 또한 너무도 아름다운 공간을 간직하고 있다

정말 고즈넉함이란 이런것이다라고 말하는듯하다






입교당의 대청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면 요즘같이 바쁜 세상을 잠시나마 등질수 있어 너무도 좋다




입교당의 뒤에는 신문(神門)이 있는데 서원의 내삼문(內三門)에 해당하며, 향사(享祀) 때에 제관(祭官)들이 출입하였다

정면 3칸의 솟을삼문으로 사당의 출입문답게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 있다
향사례에서 신문 앞의 마당은 중요한 장소가 된다. 집례를 맡은 임원들은 신문 안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일반 학생들은 앞마당에서 참관하여야 한다



15년만에 다시찾은 병산서원

기억이 추억을 지배하는지 추억이 기억을 지배하는지 때로는 추억의 공간이 현실에선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해질때가 있다

예전에 부산 태종대로 가던 버스에서 무심코 봤던 붉은색의 아름다운 등대는 다시 찾았을때 흰색의 등대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던적이 있었다

혹시 색을 다시 칠했나 알아봤지만 그 등대는 한번도 붉은색이었던적이 없었다고....

병산서원도 내 마음속에선 아름다운 공간이었는데 좋은것만 기억하려는 습성때문에 좋은 추억으로 꾸며져 있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하며 찾았지만

여전히 병산서원은 추억속의 멋진 공간이란 사실을 확인하는데 5초면 충분했다


병산서원 공식 홈페이지 -> http://www.byeongsan.net